메뉴 건너뛰기

시조 야간공

2세조 ~ 8세조

조회 수 101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8세 장령공 휘 견 묘표음기

(八世 掌令公 諱 甄 墓表陰記)

 

嗚呼此高麗忠臣掌令徐先生之墓也先生諱甄利川人恭讓四年爲掌令與諫官金震陽李擴等請罪趙凌鄭道傳南誾洎圃隱殉國以先生及諸言者爲黨與悉放流之是年高麗亡先生遯居衿川坐不北向終身不對漢陽城郭嘗作詩曰千載神都隔杳茫忠良濟濟佐明王統三爲一功安在却恨前朝業不長大臣臺諫請鞫之我太宗大王敎曰甄高麗之臣不忘其君亦夷齊之倫其置勿問後宣祖大王因筵臣言命封其墓且賜祭墓在矜川樊塘里去縣治十里餘今縣監李濟遠往拜之慨然曰忠臣之墓其可無表乎爲具一石將堅之墓前以告其父縡聞而喜之曰昔朱夫子之任長沙首錄死節五人立其廟兒其知此義矣先生以一身扶樹五百年倫常與圃翁生死雖異而爲仁則一可以爭光於日月顧事蹟微味無可徵信而獨以言志之作猶可以想見先生本心於百世之下夫浴觀夷齊者採薇一歌足矣又何必多乎哉可歸而刻諸表陰也

崇禎甲申後九十九年癸亥八月 日

資憲大夫議政府左叅贊牛峯李縡記

 

 

장령공 휘 견 묘표음기(八世掌令公諱甄墓表陰記)

 

슬프다 고려충신 장령서선생(掌令徐先生)의 묘이다.

선생은 이름을 견(甄)이라 하고 이천서씨이니라 고려 공양왕(恭讓王) 4년(서기 1392년) 임신년 4월에 벼슬이 장령(掌令)이 되어 간관(諫官 : 사간원 관리) 김진양(金震陽) 이확(李擴) 등과 더불어 소장(訴狀)을 오려 조담(趙淡) 정도전(鄭道傳) 남은(南誾)을 처벌할 것을 청하다가 충신 정포은(鄭圃隱)이 해를 입음에 이르러 선생 등도 뜻을 함께 한 무리로 몰려 먼 곳으로 유배되고 말았다.

고려가 망하니 선생은 세상을 피해서 금천(衿川 : 지금의 시흥)에 사시면서 북쪽을 향하여 앉지 않았으며 죽을 때까지 한양성곽(漢陽城郭)을 대(對)하지 않았고 시를 지어 회포를 풀어 이르기를 「천재신도격묘망(千載神都隔杳范)하고 충량제제좌명왕(忠良濟濟佐明王) 이라 통삼위일공안재(統三爲一功安在)요 각한전조업부장(却恨前朝業不長)」이라 「천년 도읍지 송도는 헤어져 아득하고 충량한 많은 신하 밝은 임금 도운 뜻도 헛되었도다 삼국을 통일하여 고려를 세운 그 공의 보함도 없이 왕업이 길이 이어가지 못함을 한하노라」 하였었은즉 조선 태종왕 때에 대신들이 선생을 국문(鞠問 : 죄를 신문함)하기를 간청하니 태종은 교지(敎旨)를 내려 이르기를 견(甄)은 고려의 신하로 그 임금을 잊지 않으니 이는 백이숙제(佰夷叔齊)와 같은 사람이라 죄를 묻지 말라고 하였다. 그 뒤에 선조왕(宣祖王)이 선생의 묘를 봉(封)하고 또 사제(賜祭 :제사 지냄을 하명함)했다.

묘는 금천의 번당리(樊壤里)에 있어 현청(縣廳)에서 십여리 거리다.

이제 현감 이제원(李濟遠)이 참배하고 감개무량하여 충신의 무덤에 어찌 표(表)가 없을소냐 말하고 일석(一石)을 갖추어 묘전에 세우고자 하여 이 말을 그 아비인 나 이재(李縡)에게 말하는지라 나는 듣고 매우 기뻐 말하기를 「옛날에 주부자(朱夫子)가 장사(長沙 : 중국의 지명)에 취임하여 제일 먼저 행한 일이 사절한 5인(死節五人)을 위하여 묘(廟)를 세웠다 하는데 네가 그 참뜻을 아는구나」하며 만족했다.

선생은 일신으로 고려 5백년의 윤의(倫義)와 기상(氣常)을 북돋았으며 정포은(鄭圃隱) 선생과 생사를 서로 달리 했으나 인의(仁義)를 위해서는 마찬가지라 가히 그 빛남이 일월(日月)과 같았도다. 사적을 상고함에 자세치 못하나 그 뜻을 깊이 살펴보면 선생의 본심은 무릇 백년전세(百年前世)의 백이숙제를 본 듯하여 저 유명한 고사리를 캐는 노래(採薇歌) 한마디로 족할 것이니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돌아가 비문을 새길 일 뿐이로다.

영조 계해년(英祖癸亥年)(西紀1743年) 8月

자헌대부의정부좌참찬(資憲大夫議政府左參贊)

우봉(牛峯) 이 재(李 縡) 기(記)

 

▶ 주해(註解) ◀

· 장령(掌令) : 사헌부 감찰사의 관직 종4품

· 간관(諫官) : 임금의 정사를 보필하여 직소(직소)하는 관직

· 주부자(朱夫子) : 중국 남송(南宋)의 유학자 주희(朱熹)를 후세사람이 주부자라 함

· 사절오인(死節五人)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