徐訥列傳
訥成宗十五年擢甲科顯宗朝累遷尙書吏部侍郞兼左諫議大夫移國子祭酒知吏部事王納訥女爲妃授訥中樞使右散騎常侍驟拜門下侍郞同內史門下平章事判尙書吏部事德宗初加檢校太師進門下侍中靖宗時判都兵馬使王遣戶部郞中庾先如契丹謝安撫訥奏曰往歲契丹欲於鴨江東加築城堡今復和親可因庾先附表請罷王從之七年賜几杖加重大匡明年再上表乞退不允訥遘疾寓地藏寺王遣右承宣金廷俊問疾以御衣二襲穀一千碩馬二匹納寺祈福疾篤親臨視之制加三重大匡內史令賜子孫永業田及卒王哀悼贈諡簡敬後配享靖宗廟庭宣宗三年避先王諡改元肅
高麗史 卷九十四 列傳 卷第七 徐訥條
서눌열전(徐訥列傳) (번역문)
서눌은 성종 15년(996)의 과거(科擧)에서 갑과로 급제 하였다. 현종조에 여러 벼슬을 거쳐 상서 이부시랑 겸 좌간의대부가 되었다가, 자리를 옮겨 국자제주, 지이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왕이 서눌의 딸을 왕비로 맞이한 뒤 그에게 중추사 우산 기상시직을 내렸으며, 곧이어 문하시랑 동내사문하평장사 판상서이부사로 임명하였다. 덕종초에 검교태사 벼슬이 더해졌고, 문하시중이 되었으며, 정종때에는 판도병마사직에 올랐다.
정종이 호부낭중 유선을 거란에 보내어 그들이 국경지방 주민을 평안하게 살도록 해준대 대해 사의를 표하고자 하였다. 이때 서눌이 “몇년전에 거란이 압록강 동쪽에 성과 보루를 증축하고자 했는데, 이제 다시 화친을 맺었으니, 유선 편에 그것을 철수해주기를 청하는 것이 좋겠습니다.”하니, 왕이 그의 말을 따랐다. 정종 7년(1041)에 궤장을 내려주고 중대광을 더하여 주었다. 다음해에 다시 표(表)를 올려 물러나기를 청했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서눌이 병에 걸려 지장사에 있을 때, 왕은 우승선 김정준을 보내어 문병하게 하고, 임금의 옷 두벌과 곡식 천석, 말 2필을 절에 보시하면서 서눌의 복을 빌었다. 병이 심해지자 친히 와 보시고, 명령을 내려 삼중대광 내사령 벼슬을 더해주었으며, 자손들에게 영업전을 내렸다. 서눌이 죽자 왕은 애도하며 간경(簡敬)이란 시호를 내렸다. 뒤에 정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선종 3년(1086)에 선황인 순종(順宗)의 시호를 피하여 원숙(元肅)으로 시호를 고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