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세손 재상 서공(徐恭)의 발자취
서공은 서희의 현손으로 의종조에 경영전판관(景靈殿判官)에 음보(蔭補)되었다. 서경에 임금을 모시고 갔을 때, 왕이 개경(현재 개성)과 서경(현재 평양)의 문무관에 명하여 활쏘기를 하였다. 날이 어두워지자 큰 촛불을 과녁 위에 꽂고 쏘게 하였는데 서경 사람들은 많이 맞혔으나 따라간 신하 가운데서는 맞히는 자가 없어 왕이 자못 불편하였는데 서공의 첫 화살이 초를 맞히고 두 번째 화살이 과녁을 맞히자 왕이 몹시 기뻐하며 비단을 내렸다.
벼슬이 계속 높아져 평장사까지 이르렀다. 명종 원년(1171년)에 돌아가셨다. 사람됨이 담력과 지략이 있다. 말탄채 활쏘는 것을 잘하여 여섯 번 양계병마사(兩界兵馬使)가 되었는데 사졸들이 즐겨 따랐고, 재상이 되자 뜻이 더욱 겸손하였다. 문관 선비들이 교만하고 오만한 것을 걱정하고, 무인을 예우하였기 때문에 정중부의 난 때 중방(重房)이 순검군 22 명에게 그 집을 둘러쌓고 호위하도록 해 화가 미치지 아니하였다.
(고려사 94권, 열전 7 서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