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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야간공

2세조 ~ 8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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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 평장사공 휘 정 행적(五世 平章事公 諱 靖 行蹟)

 

公諱靖高麗文宗十九年乙巳爲殿中少監夏四月契丹遣寧遠軍節度使耶律寧益州管內觀察使丁文通來加冊文宗爲守正保義功臣食邑三千戶實封三百戶旒九族冠九章服玉圭玉冊衆略襨衣匹段弓箭鞍馬等物秋八月王以公及尙書右僕射金良贄特節如契丹謝冊命旣而復命時王崇儒儒臣立徒者十一崔沖鄭倍傑徐碩及公大振文風矣三十七年癸亥文宗薨宣宗卽位知遇殊厚八年辛未爲兵部尙書是歲之九月王御賞春亭召公及王弟鷄林公熙扶餘公燧平章事柳洪左僕射邵台輔上將軍王國髦門下省高景翰林士孫冠等置酒從容問以邊事其禮遇如此九年壬申夏四月以公爲西北面兵馬使兼中軍兵馬使將赴鎭王親授斧鍼使專制閫外十年癸酉五月爲尙書左僕射參知政事判三司事後復爲中書侍郞平章事上柱國公立朝四十餘年先以使節聘於隣國不辱君命後爲元老屹然爲邦家柱石盖同聲相應同氣相求君臣同德致此昇平爲後世龜鑑矣

 

평장사공 휘 정 행적(五世 平章事公 諱 靖 行蹟) (번역문)

 

공의 휘는 정(靖)이니 고려 문종(文宗) 19년 을사(乙巳 서기 1065)년에 전중소감(殿中少監)이 되었다. 여름 4월에 거란(契丹)이 영원군(寧遠軍) 절도사(節度使) 야율(耶律)과 익주(益州)간내 관찰사 정문통(丁文通)을 보내서 문종을 책봉해 수정보의공신(守正保義功臣)을 삼고 식읍(食邑) 3000호를 주었다 하니 실상은 300호를 봉했고 9족의 면류관 9장(章)의 복식 옥규(玉圭)와 옥책(玉冊) 큰 수레 비단필 활과 화살 안마(鞍馬) 등 속을 보내왔다 가을 8月에 왕이 公과 상서 우복야 김양지(金良贄)에게 절기를 주어 거란(契丹)에 가서 책명(冊命)을 사례하고 돌아오게 했다. 때에 왕이 유술을 숭상했으므로 유신중에 거처있는 이가 十분의 一밖에는 되지 않았고 최충(崔沖) 정배린(鄭倍僯) 서석(徐碩)과 公은 크게 문풍을 떨쳤다. 37년 계해(癸亥)년에 문종(文宗)이 훙하고 선종(宣宗)이 즉위해서도 대우가 유심히 두터웠다. 8년 신미(辛未)년에 병부상서(兵部尙書)가 되었다. 이해 9月에 왕이 상춘궁에 납시여 公과 함께 계림공 희(熙) 부여공 수(燧)와 평장사 류홍(柳洪) 좌복야 소태보(卲台輔) 상장군 왕모(王髦) 문하성 고경(高景) 한림학사 손관(孫冠)같은 분들을 불러 술을 들고 조용히 변방의 일을 물었으니 그 예우가 이와 같았다. 9년 임신(壬申)년 여름 4月에 公으로써 서북면 병마사겸 중근병마사를 삼아 장차 임지로 부임할 때 왕이 친히 큰 도끼를 주면 지경밖에 병권을 단독으로 처결하게 했다. 10년 계유년 5월에 상서좌복야 참지정사 판삼사사(判三司事)가 되었고 뒤에 다시 중서시랑 평장사 상주국이 되었다. 公이 조정에 선지 40영년 앞으로는 사절이 되어 이웃 나라를 왕래했으며 군명을 욕되게 한일이 없고 뒤로는 원로가 되어 우뚝이 나라의 주석이 되었으니 대체로 같은 소리로 호응하고 같은 기운으로 친합해서 군신이 덕을 모아 이러한 승평 세대를 이룬 것은 후세의 귀감이 되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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