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서씨 족보에서 3대의 기록이 없어진 까닭
우리 족보를 보면 시조로부터 제7세손까지 7대는 정확한 기록이 있으나 8세손부터 그 흐름이 갑자기 사라진다. 그 뒤 중시조인 인(麟)자 할아버지부터 다시 시작한다. 다시 말해 7세손인 서순(1170)과 서공(1171)이 돌아가신 지 50년 남짓 지난 뒤에야 우리 가계가 비로소 다시 이어지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천서씨는 고려가 개국되어 서필이 내의령으로 재상이 된 뒤 5대가 재상을 지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재상(宰相)이란 임금을 도와 백관을 지휘하던 2품 이상의 벼슬을 일컫는 말로 그야말로 당시 지배층의 실세들이었다. 서필을 포함한 6대의 최고 벼슬을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① 제2세손 서필 - 내의령(內議令) 종1품
② 제3세손 서희 - 내사령(內史令) 종1품
③ 제4세손 서눌 - 내사령(內史令) 종1품
제4세손 서유걸(維傑) - 상서도성 좌복야(左僕射) 정2품
④ 제5세손 서정(徐靖) - 판삼사사(判三司事) 종1품
⑤ 제6세손 서균(徐鈞) - 판장작감사(判將作監事) 종3품
⑥ 제7세손 서순(徐淳) -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 종2품
제7세손 서공(徐恭) - 판삼사사(判三司事) 종1품
여기서 보면 서희의 손자 서균만 종3품인 판장작감사로 재상이 되는데 한 품계가 모자라고 나머지 5대는 모두 재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직책도 국가의 최고 중추기관인 내의령, 내사령, 상서성, 삼사, 추밀원에서 요직을 맡고 있었다는 것은 당시 권력의 최고 핵심부에 있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1170년(의종 24년) 정중부, 이의방 들이 무신의 난을 일으켜 문신들이 참화를 당하는 과정에서 서씨 가문은 큰 화를 입는다. 당시 7세 할아버지들 가운데 문관으로 큰 벼슬을 한 공(恭)은 재상이 되어서도 겸손하였고, 문관 선비들이 교만하고 오만한 것을 걱정하면서 무인을 예우하였기 때문에 정중부의 난 때 중방(重房)이 순검군 22 명에게 그 집을 둘러쌓고 호위하도록 해 화가 미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순(淳, 醇)자 할아버지는 고려사절요 1170년(의종 24년) 8월 30일조에 「이고∙이의방들이 … 무릇 문신의 관을 쓴 자는 비록 서리라 할지라도 씨를 남기지 말라“하니, 군졸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판리부사 치사 최유칭, 판리부사 허홍재,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 서순(徐醇) … 등 50여 명을 수색해서 내어 죽였다」고 되어 있어 무신의 난 때 희생된 것을 알 수 있다. 무신의 난 때 화를 면한 공(恭)자 할아버지도 무신의 난이 일어난 다음해인 1171년 돌아가셨고, 그 뒤 우리 가문을 한 동안 역사의 중심에서 물러났다.
그 뒤 고려는 정중부-이의문-최충헌-최우로 이어지는 무신정권이 전횡하면서 왕권조차 힘을 못 쓰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상황 아래서 문신으로 지배층의 실세였던 이천서씨 가문은 생존을 위해서 살아남은 일부 자손이 잠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때부터 중시조인 인(隣)자 할아버지에 대한 기록이 나올 때까지 50년 남짓한 기록이 사라져버린다. 「무릇 문신의 관을 쓴 자는 비록 서리라 할지라도 씨를 남기지 말라」고 했던 분위기에서 정상적으로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고 또 불가능했던 일이다. 이때의 기록이 제대로 남아있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고 믿을 것이 못된다고 보아야지 그 사실을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신의 난으로 화를 입은 7세로부터 중시조에 이르는 사이에 몇 대나 잃어버린 것일까? 이것은 중시조가 시조 아간공으로부터 몇 대인가를 복원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이다. 우선 시조 이후 생졸연대가 확실한 기록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2세 필(弼)-901~965년
3세 희(熙)-943~998년
4세 눌(訥)․유걸(維傑)-?
5세 정(靖) -?
6세 균(鈞)-1060~1132년
7세 공(恭)․순(淳)
?세 인(麟)-1222~1305년
?세 수(秀)-1276~1338년
?세 희준(希俊)-1306~1362년
?세 운(暈)-1326~1432년
?세 호(顥)-1390~1461년
시조는 80이 넘어 아들을 낳았다고 했기 때문에 빼고, 2세 필(弼)이 태어난 901년에서 6세 균(鈞)이 태어난 1060년까지를 셈해 보면 모두 159년으로 1세의 평균연수가 약 40년이 된다. 또 중시조 인(麟)이 태어난 1222년부터 중시조 이후 5대인 호(顥)가 태어난 1390년까지도 158년으로 1세의 평균연수가 40년쯤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나온 기준치 40년을 가지고, 6세 균(鈞)이 태어난 1060년에서 중시조 인(麟)이 태어난 1222년까지의 162년을 나누어 보면 4대가 된다. 그런데 7세는 태어난 날이 없어 뺀 것이지 이미 기록이 있기 때문에 빼고나면 기록이 없는 것은 3대가 된다. 이상의 결과를 가지고 시조로부터 중시조에 이르는 대수를 복원해 보면 다음과 같다.
2세 필(弼)-901~965년
3세 희(熙)-943~998년
4세 눌(訥)․유걸(維傑)-?
5세 정(靖) -?
6세 균(鈞)-1060~1132년
7세 공(恭)․순(淳)
8세 기록 없음
9세 기록 없음
10세 기록 없음
11세 인(麟)-1222~1305년
12세 수(秀)-1276~1338년
13세 희준(希俊)-1306~1362년
14세 운(暈)-1326~1432년
15세 호(顥)-1390~1461년
(2001년 1월 7일 제31세손 길수 새로 밝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