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서씨의 시조, 아간공 서신일(徐神逸)

by 보정 posted Apr 0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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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서씨의 시조, 아간공 서신일(徐神逸)

 

서씨 시조 서신일(徐神逸)은 신라 말엽에 벼슬이 아간(阿干)에 이르렀으나 그 벼슬을 버리고 아우 신통(神通)과 함께 한천(漢川, 지금의 경기도 이천) 효양산 밑에 와서 살았다. 스스로 처사라고 부르며 후진 교육을 업으로 삼으시니 가깝고 먼 곳에서 모여든 제자들이 날로 불어서 집 안팎에 가득하였다.

 

공이 74세 때 부인이 세상을 떠났으나 뒤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아우 서신통이 자기 아들 서목()이 형의 뒤를 잇게 해달라고 청하였으나 공은 "하나밖에 없는 아우의 아들을 빼앗아 자기 아들을 삼는다는 것은 인정이 아니다"며 끝내 듣지 아니하였다. 제자들은 이런 사정이 두렵고 민망하여 아뢰기를 "선생님께서 아무도 뒤를 잇도록 허락하지 않으시면 후일 선생님의 묘를 누구에게 의탁하겠습니까? 다시 부인을 맞이하여 뒤를 이을 아들을 얻는 것이 좋을까 하나이다"고 하였다. 공이 이 말을 옳게 생각하여 다시 배필을 맞이하였다.

 

어느 봄날 공이 제자들을 거느리고 들에서 농사일을 하시는데 화살을 맞은 사슴 한 마리가 급히 뛰어오더니 공의 앞에 쓰러지고 말았다. 공은 불쌍히 여기시어 화살을 뽑고 약을 바른 다음 멍석 밑에 숨겨주었다. 이윽고 뒤따라온 사냥꾼이 나타나서 사슴이 간 곳을 물었다. 이에 공은 "그대 한 사람이 두려워서 도망친 짐승이 어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떠들면서 일하는 곳에 뛰어들어오겠는가?" 하시니, 사냥꾼이 하는 수 없이 돌아가고 말았다.

 

그날 밤 꿈에 한 신인이 나타나서 "어제 그 사슴은 나의 아들인데 그대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하였으니 나는 그대의 자손들로 하여금 대대로 재상이 되어 영달하도록 도우리라" 하고 사라졌다. 그 뒤 공의 연세 80이 넘어 아들을 낳으니 이분이 고려 초기에 재상이 되신 정민공 필()이시다. 그 후 과연 신인의 말과 같이 훌륭한 자손들이 많이 나타났으나 목()의 뒷일은 들리는 바가 없다.

 

(이천서씨 난정공파보, 행록, 1995, 12~13쪽 내용을 다듬어 올렸)